낭만 그 자체였던 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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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체 베누치(Felice Benuzzi, 1910~1988)는 이탈리아 출신의 식민지 공무원이자 외교관, 열정적인 산악인이었습니다. 1941년 에티오피아에서 영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케냐 난유키 소재 제354 포로수용소에 수감됐습니다. 포로 생활의 지독한 권태 속에 우기가 끝나고 구름이 걷히던 어느 날 수용소 너머로 케냐산의 웅장한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베누치는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탈출해서 저 산을 오르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의사이자 등반 경험이 있는 동료 조반니 발레토와 배짱 하나로 합류한 선원 출신 빈첸초 바르소티를 포섭했습니다. 준비 기간은 8개월이었습니다. 모든 장비를 수용소 쓰레기장에서 구하거나 직접 만들었습니다. 버려진 자동차 부품과 철조망으로 아이젠을 제작하고, 몰래 빼돌린 망치를 두드려 얼음도끼를 만들었으며 침대 그물을 엮어 밧줄을 만들었습니다. 지도는 고기 통조림 라벨에 그려진 케냐산 그림이 전부였습니다. 베누치는 8개월 동안 배급 담배를 피우지 않고 모아 다른 포로들과 비스킷, 초콜릿으로 교환해 식량을 비축했습니다. 1943년 1월 24일, 수용소장 책상에서 발견한 열쇠 모양을 타르에 찍어 복제한 가짜 열쇠로 채소밭 문을 열고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코끼리와 표범이 출몰하는 밀림을 며칠에 걸쳐 뚫고 케냐산 베이스캠프에 도달했습니다. 선원 출신 바르소티는 고산병으로 베이스캠프에 남았고, 베누치와 발레토가 정상에 도전했습니다. 악천후와 눈보라로 최고봉 바티안(5,199m) 정상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세 번째 높이의 포인트 레나나(4,985m)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수용소에서 몰래 가져온 수제 이탈리아 국기를 꽂고 자신들의 이름이 담긴 메모를 브랜디 병에 넣어 남겼습니다. 탈출 18일 만인 2월 10일, 극도로 굶주린 세 사람은 철조망을 다시 뚫고 수용소 안으로 잠입한 뒤 말끔히 씻고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 당당히 자수했습니다. 경악한 수용소장은 처음에 28일 독방 감금을 선고했지만, "놀라운 스포츠 정신"을 인정해 7일로 감면해줬습니다. 참고로 베누치는 1946년 이 경험을 담은 저서 《케냐산에서의 소풍은 없다(No Picnic on Mount Kenya)》를 출간했으며, 이 책은 세계 등반 문학의 고전으로 남아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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